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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 Yeon Gaesomun of Koguryeo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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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6-12-21 22:00 조회 796 댓글 0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 Yeon Gaesomun of Koguryeo 3/4
 
연개소문(淵蓋蘇文, 601 ~ 665년)은 고구려 말기의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일명 개금(蓋金)으로도 불린다.

중국의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및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사서와, 이를 토대로 재편집한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에는 당나라 고조(高祖)의 휘(諱) 이연(李淵)의 '연(淵)'자를 피하기 위해 천개소문(泉蓋蘇文)으로 기록하였다. 일본의 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이리카스미[*])라고도 표기되어 있어, 한국의 고대 인명의 유추에 단서가 된다.

생애

연개소문의 아들로서 고구려가 멸망할 때 당에 투항하여 당의 관직을 받은 연남생(淵男生)의 묘지명 『천남생묘지명(泉男生墓誌銘)』에 보면, 남생의 할아버지 즉 연개소문의 아버지는 태조(太祚), 할아버지는 자유(子遊)라고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두 사람 모두 고구려의 막리지(莫離支) 관직를 세습했다고 되어 있다. 《당서》에는 막리지를 「당의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중서령(中書令)」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원전이 된 《구당서》와 《신당서》 고려전에는 연개소문이 동부대인(東部大人, 혹은 서부西部) 및 대대로(大對盧)를 지낸 아버지가 죽은 뒤 아버지의 자리를 오르려 하였으나 그의 품성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반대가 심하여, 그 자신이 직접 여러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애걸한 끝에 겨우 아버지의 자리를 세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영류왕 14년(631년)에 고구려의 서쪽 국경에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쌓을 때, 왕은 연개소문으로 하여금 장성 축조를 감독하도록 했다. 영류왕과 대신들은 연개소문의 성품을 두려워하던 끝에 죽이려 모의했으나, 연개소문은 이것을 사전에 눈치를 채고 자신이 통솔하는 군 사열식에 대신 1백여 명(《일본서기》는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 등 180여 명」)을 초대하여 모두 살해하고, 대궐로 쳐들어가 영류왕을 죽이는 쿠데타를 일으켰다[2]. 그리고 영류왕의 조카였던 장(臧)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대막리지(大莫離支)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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